작고 예쁜. 그러나 편하게 기대 앉을 수 없는 웨하스 의자. by 델마루스

그 땐 몰랐다. 왜 제목이 웨하스 의자인지. 사실 지금도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만의 해석이 생긴 것일 뿐이니까.

웨하스 의자는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를 구입해 읽고 그녀의 글에 빠져버렸다.

글쎄, 사실 그 단편집은 크게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반짝반짝 빛나는’을 최고로 치고, 그 다음은 아마 이 ‘웨하스 의자’가 아닐까. 단언하건대, 고등학생 때 랭크는 이렇지 않았을 테다. 그 땐 큰 공감을 얻을 수 없었으니까.


이 책을 다시 만난 건 2013년이던가, 대학 동기가 운영하는 부스 방문 차 들렸던 서울국제도서전에서였다. 3,000원인가 하는 돈을 주고 망설임 없이 구입해 다시 읽었다. 그리고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문장들을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나는 그새 커버렸으며, 어린 나 역시 풍부하게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자료를 뒤적거려 봤는데, 글쎄,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게 불륜에 대한 이야기라니? 어쩐지 둘의 관계가 굉장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들의 사랑 방식이려니 넘겼는데. 그럴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륜도, 어찌 보면 사랑 방식 중 하나긴 하니까. 도덕적으로 굉장히 잘못 되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지탄받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정보를 알고 다시 소설을 읽자 기분이 더 오묘했다. 몇 구절을 사진에 담아 보내주고 싶은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사랑이 불륜이건 아니건, 소설에 담긴 사랑은 그저 사랑 자체다. 그래서 공감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기에 더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어떤 것보다 소설 속 그녀의 감정들이 익숙했다는 점이. 좀 안타까워졌다.


웨하스 의자. 작고 예쁜 웨하스로 만든 의자. 그러나 언제 부서질지 몰라 늘 불안하다. 그래서 질펀하게 앉을 수 없다. 하지만 의자란 애초에 편하게 앉아있으라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 앉을 수 없는 의자가 제 아무리 작고 예쁜들 무슨 소용일까. 그저 남들에게 보이는 용 이외에. 의자만 그러한가. 결국 사람도, 사랑도 웨하스 의자와 같다면, 그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출처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소설가) 저, 김난주(번역가) 역, 소담출판사, 2004

지나칠 수 없어 적어둔 기억
나는 말이 없는 어린애였는데, 그것은 나 자신을 마치 홍찻잔에 곁들여진 각설탕처럼 여겼기 때문이었다.


만나보고 싶네. 그녀도, 그 시절의 당신도.


밤, 침대로 들어가려는데, 어이, 하고 오랜만에 그것이 찾아온다. 나는 할 수 없이 문을 열고 맞아들인다. 아무도, 절망을 내쫓을 수 없다. 우리는 마주하고, 천천히 말을 주고받는다. 잘 지냈어? 별 문제 없었던 것 같은데. 절망은 그렇게 말하고, 친근한 몸짓으로 내 무릎을 톡톡 친다. 침대에 들어가 얌전히 베개에 등을 기대고 있는 내 무릎을.


왜일까. 나는 어른인데, 때로 어린애의 시간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밤. 나는 내가 애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기다리고 있지 않다고 착각하기 위해서 혼자 외출한다.


"당신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당신이 있어 주었으면, 나 그렇게 고독하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외로워지고, 애인의 미소도 그 외로움을 치유해주지 못한다. 외로움은, 불쑥 찾아와 입을 쩍 벌린다. 그런 때마다 나는 걸려 넘어져 송두리째 삼켜져버린다.


나는 갇혀 있다고 느낀다. 애인의 마음속에, 또는 어린애인 내 머리 속에.


나의 애인은 내가 아름답다고 한다.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더 이상 1밀리미터도 길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완벽하니까, 라고. 속눈썹 숫자 하나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언가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아무도 도울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사랑에 빠졌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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